축구2007.11.09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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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젠 하루 종일 비행기를 탔습니다. 긴 미국 출장에서 돌아와 9일 아침 인터넷을 연결하니 박찬호(34)의 다저스 복귀 소식이 환하게 반기더군요.

 ‘다저스와 박찬호,’

 거의 14년 전에 시작된 그 소중한 인연은 이제 종착역을 앞둔 노장 투수의 야구 생애를 마지막 정리하는 단계에서도 또 다시 끊을 수 없는 인연으로 새롭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 해 초 예상보다 팀 선정이 늦어지며 박찬호는 스캇 보라스와의 인연을 끊고 제프 보리스를 새로 에이전트로 고용, 팀 찾기에 분주했었습니다. 당시에도 그러나 박찬호가 가장 원했던 팀은 다저스였습니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조건이 맞지 않았고, 결국 뉴욕 메츠를 택했지만 빅리그 진입에는 실패했습니다. 휴스턴으로 팀을 옮겼지만 올 한 시즌을 트리플A에서 보내며 다음 시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이너에서 올 시즌을 마친 박찬호의 내년 시즌이 과연 어떻게 전개될지가 궁금하기는 했지만 마음 한 편에서는 결국 그의 선택이 다저스가 될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습니다. 다저스와 '천사의 도시' LA는 박찬호에게 ‘제2의 고향’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본인의 표현대로 ‘공주 촌놈’에게 미국 야구 도전의 문을 열어주었던 팀이었고, 명예와 부와 새로운 삶을 열은 곳이 LA이었습니다. 다저스에 몸담고 있는 동안 한국 교민들의 희망으로 떠올랐고, 가는 곳마다 영웅 대접을 받던 곳이었습니다.

다저스-찬호 계약 공식 확인은 아직 못하지만 기정사실화

박찬호의 다저스 계약 내용을 확인하려고 제프 보리스의 ‘베벌리힐스 스포츠 카운셀’에 통화를 시도했지만 보리스는 자리에 없었고,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해줄 것이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에이전트들은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갈 때에도 오리발을 내미는 경우가 빈번하니 사실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저스와도 계속 접촉을 시도한 끝에 홍보실장 조시 로위치와 통화가 됐습니다. 역시 공식입장은 마찬가지로 ‘아직은 협상 내용이 결정된 것이 없다.’였습니다. 그러나 로위치는 “다저스로서도 환영할만한 일이며 찬호가 베로비치의 스프링 캠프에 참석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마도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논 로스터 인바이티 선수로 캠프에 참석할 것이다. 그러나 4,5선발을 차지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본다.”는 개인 소견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다저스의 현재 선발 요원을 살펴보면 일단 내년 시즌 자리가 확고한 선수는 브래드 페니데릭 로우, 채드 빌링슬리 등 세 명입니다. 그리고 작년에 에이스로 영입했던 제이슨 슈미트도 내년 시즌에 맞춰 순조롭게 재활을 하고 있습니다. 어깨 수술을 받은 슈미트에 대해 로위치 실장은 스프링 캠프부터 정상 훈련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이나 수술을 받았던 노장 에스테반 로아이자는 시즌 초 복귀가 의문이고, 좌완 랜디 울프는 FA로 풀려 재계약이 불투명합니다.

다저스 시절 박찬호의 활약

스포츠 조선 특파원으로 있던 지난 1993년 12월31일 요란한 전화 소리가 새벽의 고요함을 깨면서 박찬호와의 인연이 시작됐었습니다. 앳된 스무 살 청년 박찬호가 새로 마련해 왠지 어색한 양복을 입고 환하게 웃으면서 입단 기자회견을 하던 모습은 지금도 눈앞에 생생합니다. 스프링 캠프에서 98마일의 강속구를 뿌려대자 ESPN의 야구 칼럼니스트인 피터 개몬스는 당장 빅리그를 뒤흔들 신인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했습니다.

다저스타디움의 팬 사인회에서 팬들과 함께 하던 박찬호는 늘 인기 높던 선수였습니다.

박찬호는 동료 대런 드라이포트와 함께 마이너리그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빅리그에 합류하며 화제가 됐지만 결국 마이너로 가서 2년간의 수업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1996년 4월8일 매운 날씨의 시카고 리글리 필드에서 한국인 최초로 빅리그 승리를 기록한 이래 박찬호는 다저스에서만 6년간 80승을 거두며 특급 투수로 올라섰습니다. 2000년 시즌의 18승은 양키스의 왕치엔밍이 작년에 깨기 전까지 동양 투수 한 시즌 최다승이었습니다.

그리고 2001년 시즌을 끝으로 FA가 되면서 보라스의 치밀한 계획 아래 박찬호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간 6500만 달러의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그리고는 부상의 부진이 이어지는 힘겨운 시절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마지막 승부수

박찬호의 다저스 행의 과정은 조금 이례적입니다. 빅리그에서 선수가 이런 식으로 팀을 고르는 경우를 보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기적으로도 아직 윈터 미팅도 시작되기 훨씬 전인데 벌써 내년 거취를 결정짓는 것 역시 보기 드뭅니다. 그만큼 박찬호 선수의 다저스 복귀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그에게 남은 도전의 기회가 별로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최후의 도전은 다저스에서 하겠다는 의지의 표상이기도 합니다.

제게 예상을 하라면 솔직히 박찬호가 다저스에서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일단 올 시즌 구위가 마이너리그에서도 눈에 띄는 성적을 올릴 정도로 올라오지는 못했습니다. 체력적으로도 이제는 20대말의 전성기를 보내던 선수는 아닙니다.

그러나 박찬호가 늘 신뢰를 주는 것은 그의 정신력과 노력입니다. 그리고 자신과의 약속을 절대 어기지 않으려는 신념입니다. 오프 시즌에 참가하고 있는 올림픽 예선전 역시 박찬호에게 상당히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꾸준한 단체 훈련과 실전도 도움이 크지만, 대표팀 투수 코치를 맡은 선동렬 삼성 감독의 조언과 빅리그 113승 투수인 박찬호의 노하우가 어우러지면 분명히 상승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내년에 빅리그에서 화려하게 재기를 할지, 아니면 스프링 캠프의 치열한 경쟁에서 탈락할지 예측하기 힘든 여정이 박찬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부와 명예를 모두 획득했고 부상과 부진과 1년간의 마이너리그 생활까지 겪은 30대 중반의 선수가 마지막 불꽃을 태우겠다는 의지로 다시 도전하는 모습은 보기 좋습니다.

다저스는 내년 봄 플로리다 주 베로비치의 다저타운에서 마지막으로 스프링 캠프를 합니다. 1948년 이래 그곳에 캠프를 차렸던 전통도 실리에 밀려 사라지고 맙니다.(다저스는 2009년부터 애리조나에 캠프를 차립니다.) 박찬호가 1994년 처음 미국 야구를 접했던 바로 그곳도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그 다저타운에서의 마지막 스프링 캠프에서 박찬호 선수가 다시 한번 낭보를 전해주기를 기대해봅니다

Posted by 블로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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